미정(未仃)전 03 연재


늑대아이 OST - オヨステ・アイナ






미정(未仃)전
03








 

  태형이는 정말 활동량이 많았어요. 동이 트기 전부터 태형이는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보다 더 빨리 일어나 할 일도 없으면서 마루 위를 쿵쿵거리며 뛰어다녔어요. 저희 집에서 새롭게 첫 아침을 맞이한 날에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안채부터 사랑채 심지어 헛간까지 문을 열어 재끼면서 집 구경을 하는 가하면 안채 옆 마당에 놓인 장독대 속을 살펴보면서 담가둔 된장을 맛보기까지 했죠. 그래서 처음엔 동이 트고 닭이 우는 소리에 일찍이 일어난 할머니가 문을 열자마자 얼굴 전체가 된장 범벅이 돼 마루에 대자로 뻗어있는 태형이를 보고 기함을 했었어요. 된장 소금의 짠 기운에 얼굴이 따가웠던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할머니를 향해 반가움의 표시로 활짝 웃어주는 걸 잊지 않았대요.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으론 넘치는 기운을 주체 못 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 그대로 막 태어난 새끼 재구 같았대요.

 



  하지만 평화는 얼마 가지 않았어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문제는 기다렸다는 듯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일어났어요. 그 날은 여태껏 정성스레 키워 놓은 석류들로 과일주를 만들기로 약속한 날이었어요.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벌어진 소동으로 붉은 석류 알맹이들은 술 한 번 만나보지 못하고 다음날을 기약해야 했었죠.




 

 

- ...고만-! 정국아!

- 으음-



  

 

  엎드려 세상모르게 잠에 들어있던 지민이 귀를 간질이는 소음에 앓는 소리를 냈다. 문에서 새어나오는 귀찮은 소리에 지민이 벽 쪽으로 등을 돌렸다가 이내 그르렁거리는 짐승소리에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몇 번 눈을 꿈벅거리던 지민이 슬그머니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멍하니 태형이 나가고 없는 텅 빈 방안을 둘러보다 갑자기 벌컥 하고 방문을 여는 할머니 때문에 지민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평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할머니의 머리가 잔머리를 숨기지 못 하고 산만해져있었다. 할머니는 다급하게 지민을 향해 소리쳤다.

 



  

- 아들 좀 말려봐야!

- ?

- 점마들 지금 난리 났다! 아주 물어뜯고, 저러다 아 하나 크게 다치겠다!

 

  


 

  허겁지겁 방에서 나와 마루에 섰을 땐 태형이와 정국이가 흙 마당에서 서로 엉켜 붙어 으르렁 거리고 있었어요. 새끼 늑대의 날이 무른 송곳니는 새끼 강아지의 여린 가죽을 계속 물어댔고 강아지는 늑대에게 깔려서 그르렁대며 버둥거리고 있었어요. 정국이도 태형이에게 꽤나 물어 뜯겼는지 털 곳곳에 붉은 피가 묻어있었어요. 할머니는 도저히 말로는 해결이 안됐던지 빗자루를 가지고와 엉켜 붙은 태형이와 정국이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계셨어요. 놀라 넋을 뺀 저를 할머니가 크게 불렀어요. 그제 서야 저도 그 싸움판을 말리려 마당으로 뛰어갔지만 결국엔 살벌한 두 어린 짐승에게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어요. 정말 할머니말대로 누구 하나 크게 다칠 것 같았어요. 차마 어쩌지 못하고 애가 타 제 이마로 식은땀이 맺혔어요.

 



  

- 지민아, 강아지 꽉 붙들어 매라.

 

  


 

  할머니는 도를 넘은 어린 남자아이들의 싸움에 결국엔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어요. 빗자루를 저 멀리 석류나무에 던져버리시곤 무작정 그 엉망이 된 둘 틈으로 손을 집어넣으셨어요. 짐승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할머니의 손등 위로 상처를 남겼지만 할머니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우선 늑대부터 강하게 품에 끌어안아 떼어놓았어요. 열이 잔뜩 오른 강아지는 고집을 부리고 늑대에게 다시 뛰어가려 했지만 후다닥 제가 그 강아지를 품에 껴안았어요. 몇 분을 서로를 향해 이를 내어 보이며 위협하던 늑대와 강아지는 어느 순간 서서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제 품에서 갑자기 커져버린 태형이 때문에 살짝 당황한 저는 곧이어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하는 태형이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어요. 벌거벗은 채 할머니 품에 안겨있던 정국이는 그런 태형이를 말없이 노려봤어요. 동그란 눈이 잔뜩 날이 서있어서 살벌했어요.

 

 

 

 

 


  상비약이 든 상자를 들고 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가 대청나무에 각자 떨어져 앉은 태형이와 정국이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멀리 떨어진 그 둘 사이로 지민이 어색하게 앉아 할머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리어 눈치를 보는 지민이 안쓰러워 할머니는 여린 머리칼을 한차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할머니의 덤덤한 손길에 지민의 고개가 한차례 밑으로 푹 꺼졌다 일으켜졌다. 자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팅팅 부운 지민의 눈두덩이가 꿈벅거리며 지금 이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소리 없이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허나 도망가고 싶은 지민의 마음과 다르게 할머니는 오히려 조그만 지민의 손에 연고를 쥐어주고 정국이를 향해 지민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곧 지민의 퉁퉁 부운 눈두덩이 사이로 보이는 맑은 눈동자에 일말의 당황함이 어렸다.

 

  


 

- 정국이, 점마 얼굴에 상처가 까득하다. 지민이가 가서 호 해주면 다 나아 버린다.

- ...

- 어여 가서 아궁이에 불 때 듯 후- 해줘.




 

 

  그때 얼마나 내적 갈등이 심했으면 그 오래된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니까요. 잔뜩 긴장한 제 얼굴에 할머니가 장난스럽게 말을 했지만 연고를 꼭 쥔 제 손은 딱딱하게 얼어붙어서 움직일 생각을 안 했어요. 망부석 마냥 앉아있는 저를 지나쳐 저 멀리 심통 난 태형이한테 간 할머니는 할머니의 등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저를 일부러 돌아보지 않으셨어요. 아마 정국이랑 저랑 조금이라도 친해지길 바랐던 걱정 많은 할머니의 깜짝 이벤트였겠죠. 지금 생각하면 그냥 한 번 가서 심통 난 얼굴에 쓱쓱 발라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긴장을 했는지 어린 제 자신을 저도 알 수가 없어요. 아니 사실 알 것 같기도 했어요.

 

  


 

- ...

- ...



 

 

  제 간절한 눈빛에도 영 반응이 없는 할머니 때문에 푹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던 저는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슬쩍 눈동자만 돌려 옆을 쳐다봤어요. 반질반질한 대청마루에 두 다리 쫙 펴고 앉은 채 정국이가 저를 곁눈질하고 있었어요. 그것도 설핏 눈썹을 찌푸리고. 온 몸으로 다가오지 말라는 기운을 풍기는데 그 어떤 어린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가겠어요. 단정하던 얼굴도 여기저기 쓰라린 상처를 달고 있어서 괜히 기가 팍 죽어버렸어요. 사실 밥상머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던 그 날 이후로 이상하게 정국이가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 아이는 제게서 퉁 떨어져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풍겨졌어요. 괜히 가까이 다가가면 혼쭐이 날 것 같은 묘한 이질감이 있었죠. 마냥 떼를 쓰는 어린아이였던 저와 다르게 어른스러운 면이 많은 정국이에게 제가 기가 많이 눌렸었나 봐요. 내내 할머니에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냈지만 사실 전 원래 꽤 소심하고 겁이 많거든요.

 


 

  정국이만큼 얼굴에 상처가 난 태형이 앞에 쭈그려 앉아 이곳저곳 연고를 바르던 할머니가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지민을 보고 안타까운 웃음을 지었다. 정국이 점마가 어여 오라고 저렇게 눈치를 주는데. 쭉 뻗은 다리 끝으로 연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정국이를 보고 할머니가 고개를 슬슬 저었다. 아직도 손에 쥔 연고만 만지작거리는 지민에게 할머니가 다시 한 번 지민의 이름을 불렀다. 지민아-. 재촉하는 말에 어깨를 크게 한 번 들썩인 지민이 슬쩍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훔쳐보다 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가 그제 서야 안도한 듯 태형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입이 댓발 나와서 쓰라린 상처에 연고가 닿을 때마다 움직거리는 태형의 눈썹을 보며 애써 할머니가 웃음을 참았다. 몇 분을 그렇게 태형이의 상처에 집중하던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청마루를 쿵쿵 내려찍으며 방으로 뛰어 들어가듯 사라져 버리는 정국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국이 가고 홀로 남겨진 지민의 발 옆엔 떨어진 연고가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정국을 바라보며 지민은 그대로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너가 바를래?’

‘...’

내가, 그 쟤, 바르고 있을게...’

   



 

  정국이 제 앞에 내밀어진 연고를 말없이 노려봤다. 점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목 깊숙이 뜨거운 무언가가 꿀렁거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꽝하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대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정국이 지민을 한 번 쨍하게 노려봤다. 퉁퉁 부운 두 눈이 깜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다시 한 번 되새겨 지는 거리감에 억울해진 정국이 지민의 손에서 연고를 빼앗아 바닥으로 툭 내던졌다. 필요 없다. 딱딱하게 내뱉는 말에 지민이 눈치를 보며 슬쩍 뒤로 물러섰고 그 작은 발걸음에 크게 데여버린 정국은 그대로 울음을 참으며 지민을 밀치고 방으로 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곧 저 멀리 창호지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리고 그 힘을 가득 실은 문소리에 태형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햇볕에 보기 좋게 그을린 반질반질한 얼굴엔 분노보단 오히려 억울함이 가득 쌓여있었다.

   



 

우아- 진짜 석류 많다! 나 하나만 먹어봐도 되나?’

‘...안 된다.’

뭐라고? 잘 안 들린다.’

‘...안 된다고!’

 



  

  쿵! 날씨 좋은 날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은 태형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석류를 따는 제 또래 아이를 보고 살갑게 다가선 죄밖에 없는 태형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노려보는 정국을 향해 소리쳤다. 니 진짜 나한테 와 이러는데! 첫날부터 유독 저에게 쌀쌀맞은 정국에게 결국 봇물이 터져버린 태형이 저를 무시하며 마저 석류를 따는 정국의 주위를 빙빙 돌며 이유를 종용했다. 말해봐라! 머스마가 쪼잔하게 그라지 말고! 그리고 그 순간 살벌하게 표정을 굳힌 정국이 태형의 두 눈을 똑똑히 마주하며 말했다. 사람보단 어린 맹수에 가까운 기운에 맞은편 태형 또한 본능적으로 맞대응을 하며 경계의 빛을 띠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좀 꺼져라.’

‘...니 지금 나랑 싸우자는 말 돌려 하는 기가?’



 

 

  사람과 동물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어린 새끼 재구는 짧은 시간동안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스스로 곁눈질 해가며 배워왔다. 저와 비슷한 새끼재구들과 싸워가며 밥을 뺐어왔고 그 재구들 중에 으뜸이 되어야 무시 받지 않고 길을 거닐 수 있었다. 힘의 논리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살갑게 웃으며 다가가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가곤 했다. 태형의 능글거림 속엔 무른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실없이 웃다가도 저에게 먼저 달려드는 짐승을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저에게 큰 적대감을 내비치는 어린 늑대를 보며 태형은 갈등했다. 서열을 가려야할 동물임과 동시에 결국엔 같이 살아야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먼저 이를 내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정국의 말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흔히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라 할 수 있었다.

 

  


 

괜히 덤비지 말고 꺼지라고.’

‘...’

그리고 난 개랑은 안 싸운다.’

‘...이게 진짜 미칬나-’



 

 

  태형이 따끔거리는 볼을 쓰다듬으며 울컥하는 목울대를 꿀꺽 삼켜냈다. 진 게 미치도록 억울해 세상 떠나가라 울고 싶었다. ! 하며 닫힌 문을 당장에라도 열고 들어가 다시 한 번만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온 몸이 어린 늑대와의 싸움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태형이 결국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끄응 하며 눈물을 터트렸다. 언뜻 옆에서 뻣뻣하게 굳어있는 지민이 저를 당황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이 쪽팔려서 고개를 더 무릎에 파묻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노르스름한 노을이 대청마루의 바닥에 내려앉아 검붉게 반질거려왔다. 마당엔 고무대야를 가득 채운 석류들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붉게 여물은 석류들은 아쉽게도 알싸한 술을 만날 날을 다음으로 기약해야했다. 누구보다 사람 사귀기에게 서툰 세 아이들의 다툼들이 모여 대가에 한차례 조용한 기운을 내려앉게 했다. 할머니는 제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태형이와 여전히 빳빳하게 굳어 서있는 지민을 보며 흐트러진 머리를 두 손으로 쓸어 뒤로 넘겼다. 차마 뱉어내진 못한 깊은 한숨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비녀 끄트머리에 가득 담겼다. 한 아름 태형을 품에 안으며 할머니가 손짓으로 지민을 불렀다. 지민이 어수룩하게 걸어와 가만히 태형의 등을 쓸어 내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손길에 태형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지민이 복잡한 제 또래들의 마음에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손을 뗐다. 친구가 반응하는 만큼 똑같이 겁을 먹어버리는 지민을 보며 할머니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정신없이 울고 있는 태형에게 들리지 않게끔.

 

 



- ...아가 더 쓰다듬어 달라고 막 운다.

- ...?

- 겁먹지 말고 어여 살살 쓰다듬어줘.

 



  

  지민이 눈을 크게 뜨며 할머니를 올려다봤다.



 

 

  정말 할머니 말대로 더 크게 울어도 등을 쓰다듬었더니 울음이 그치긴 하더라고요. 한 삼십분 동안 쓰다듬은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지만요. 나중엔 팔이 아파서 손을 몰래 떼려다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하도 원망스럽게 저를 노려봐서 결국엔 손 한 번 떼지도 못하고 정직하게 삼십분 다 채웠었어요. 근데 그렇게 고집불통이랑 삼십분 씨름하다 보니 엉엉거리는 태형이의 울음소리가 무섭다기보다는 칭얼거리는 투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왜 아까 절 몰래 곁눈질하던 정국이가 떠올랐는지.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본 할머니의 방문은 굳게 닫혀 조용했어요. 살얼음판 같이 조용한 툇마루와 다르게 시끄러운 태형이의 울음소리가 하나도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말없이 저를 노려보던 정국이의 속마음을 뒤늦게 서야 눈치 챈 탓일 거예요. 괜히 차오르는 미안함과 민망함에 발가락을 꼬물거렸어요. 아까 정국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정국아 밥 안 묵나.

 

...안 배고프다.

 

 

 

국아 안 씻나

 

...낼 아침에.

 

 

 

...전정국이, 여즉까지 와 안 자고 있었노?

 

...자다 깼다.

 

...

 

....

 

할미가 도와줄까?

 

 

 


 

  정국이 석류가 가득 찬 작은 바구니를 내려다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할머니는 그런 정국의 어깨에 이불을 감싸주며 허허 웃었다. 아이고 우리 꾹이, 석류 팔이 소년이네. 저어기 옆방에 석류 먹고 싶어 하는 아한테 가서 헐값에 팔아버려야. 진지함이라곤 도통 찾아볼 수 없는 할머니의 표정에 정국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깨에 매단 이불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정국의 손에 바구니를 쥐어준 할머니가 얼른 방밖으로 나가라며 정국의 등을 밀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꼼짝도 안하는 정국에 할머니가 석류 몇 개를 바구니에서 꺼내 내려놓으며 말을 덧붙였다.

 


 

- 석류가 무거워서 못 걸어가나 보다.

- ...

- 그게 아이면 마음이 무거워서 그르나?

- ...아 쫌. 난 잘못한 거 없다 카이.

- 할미는 잘못했다는 말 꺼내지도 않았는데.

- ...

 


 

  정국이 괜히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가벼운 여름 이불이 정국이의 몸짓에 따라 바삭거렸다. 할머니가 풀어진 이불을 다시 여며주며 말했다.


 

 

- 와 친해지려고 살곰살곰 다가오는 아를 쥐어 박았노? 할미가 아까 다 봤다.

- ...

- 지민이도 놀라서 몬 다가왔다 아이가.

- ...목석같은 가가 놀라기도 하나?

- 아가 그렇게 안 보여도 겁이 억수로 많다.

- ...그라나.

- ...

- ...

- ...할미는 정국이가 점마들이랑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고만..

 


 

  입가에 미소를 단 채 할머니가 정국이에게 슬쩍 장난스럽게 눈치를 줬다. 입을 꾹 다물고 바구니를 쥔 정국이 고개를 올려 그런 할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할미는 정국이가 할 수 있다고 단디 믿는다. 앞머리를 턱턱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에 정국이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폭 한숨을 내쉰 정국이 슬며시 방문을 열고 툇마루로 고개를 내밀었다. 혹여나 좁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차마 방밖으론 못 나갈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툇마루엔 옅은 달빛만이 어려 있을 뿐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살며시 툇마루에 발을 들인 정국이 방밖으로 쑥 기어 나와 섰다. 얇은 이불이 달빛처럼 정국의 등 뒤를 부스럭거리며 딸려왔다.

 



  

- 방금까지도 안 자고 있는 거 할미가 보고 왔다.

- ...

- 므찌게 화해하고 석류 같이 까묵으면서 코 자라. 알았나?

- ....

 




 

  거북이 마냥 겨우 몇 걸음 떨어진 방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정국의 작은 등을 보며 할머니가 안도의 웃음을 짓고는 조용히 창호지 문을 닫았다. 달칵- 하고 닫히는 문소리에 슬쩍 뒤를 돌아보며 걱정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벌써 지민과 태형의 방문이 떡하니 정국의 앞에 있었다. 정국의 손이 망설임을 숨기지 못하고 문고리 주위만 설렁거렸다. 옅은 달빛이 그런 정국의 하얀 볼에 잠시 어리며 정국의 여린 맘을 재촉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국이 꼴각 침을 들이켰다. 입을 달싹거리며 망설이기를 잠시 곧 마음을 먹은 정국의 눈이 또렷해졌다. 작은 손이 거침없이 문고리를 쥐었고 그 순간 방 안 쪽에서 태형의 볼멘소리가 얇은 창호지 문을 뚫고 정국에게로 들려왔다.

 

 



- 그 못된 자슥이 이렇게 만들었다.


  


 

  정국이 문고리에서 얼른 손을 뗐다. 방 안쪽에서 정국이 둘러맨 이불과 똑같은 이불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냈다. 곧 이어 지민의 목소리가 조용조용하게 들려왔다. 왜 그랬대? 방문 밖의 정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차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또렷하게 창호지의 허연 문만 바라보며 청각을 곤두세웠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상처가 될 것 같은 직감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 석류 좀 노나 달라 했는데 갑자기 때리잖아-.

 



  

  손에 쥔 석류 바구니가 무거워졌다. 정국의 두 눈동자가 갈 길을 잃어 밑으로 푹 꺼졌다. 심장이 저 땅 밑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정국이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눈물줄기가 저 밑 발끝에서 아주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 나한테 먼저 말하지.

- 박지민이 니는 깨워도 안 인난다.





 

  매일 아침 방문 앞에서 망설이다 결국엔 깨우지 못하고 할머니가 대신 깨웠던 지난 날. 태형이 오고 나서부턴 그 역할이 자연스럽게 태형에게 넘어갔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둘만의 추억과 이야기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갈 용기가 쑥 사라져 버린 정국이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쭈그려 앉았다. 굵은 눈물방울이 반질반질한 툇마루에 뚝 떨어졌다. 석류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 지금도 먹고 싶다. 정국은 소리 없이 눈물방울을 떨어트리며 방 안에서의 말소리를 들었다.

 



  

- 그럼 지금이라도 갖다 줄게. 기다려.

 


  


  지민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방문 안쪽에서 이불소리, 발걸음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창호지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 정국이 눈물이 가득 찬 얼굴로 깜짝 놀라며 지민을 올려다봤다. 예상치 못한 손님에 할 말을 잃은 지민이 눈을 크게 뜨며 울고 있는 정국을 내려다보다 이내 정국의 손에 든 석류바구니로 시선을 옮겼다. 그 눈길에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린 정국이 헐레벌떡 일어나 할머니 방 쪽을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도망갈수록 발걸음은 느려지고 눈물을 봇물이 터진 듯 쭉쭉 쏟아져 내렸다. 도망가는 제 자신이 너무 싫고 원망스러웠다. 외로워하는 제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졌다. 흘린 눈물방울을 스스로 밟으며 지나갈수록 발바닥에도 눈물이 맺혔다. 척척한 발걸음이 정국의 어깨에 걸린 이불을 늘여 트리며 툇마루에 길게 흔적을 남겼다. 번데기마냥 꽁꽁 싸맸던 얇은 이불마저 사라지자 들썩거리는 작은 정국의 등이 지민의 눈에 걸려 들어왔다. 등 뒤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태형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민은 말없이 정국의 등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갑자기 지민이 정국의 이름을 불렀다.

   



 

- 정국아?

 



  

  정국의 발이 그 목소리에 꽁꽁 묶였다. 지민은 저에게로 등을 내보이고 우뚝 선 정국을 보며 방 턱을 넘어 툇마루에 섰다. 계속해서 들썩이는 등에 지민이 천천히 정국을 향해 걸어갔다. 눈치를 보면서도 전처럼 겁은 먹지 않았다. 지민의 두 눈이 순수한 호기심에 맑은 빛을 띠었다.

 

 



- ...너 지금 울어?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점차 지민의 발자국 소리가 커져갈수록 정국은 처음 겪는 낯선 기분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가기가 싫었다. 지민의 질문이 너무나 노골적이라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지민의 관심을 받을수록 더더욱 울컥울컥 쏟아져 흘렀다. 정국의 입새로 헐떡거리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정국이 급하게 팔을 들어 눈가를 벅벅 닦아냈다. 그럼에도 눈물이 더 거세져 나중엔 그냥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어느새 흐느끼는 정국의 앞에 선 지민이 고개를 살며시 내려 정국이 우는 모습을 조심히 살폈다. 코까지 흘리며 서럽게 우는 정국을 보다 지민이 손을 뻗어 얼얼한 정국의 볼을 한번 쓰다듬었다. 정국이 데인 듯 그 손에서 얼굴을 뒤로 빼냈다. 지민이 그 거부의 표시에 잠시 망설이다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 이번엔 정국의 어깨를 조심히 두드렸다. 방금 전처럼 피하지 않고 얌전히 지민의 손길을 받는 정국을 보며 지민이 도리어 제가 놀라 두 눈을 깜박거렸다. 조그만 용기를 얻은 지민이 다시 한 번 정국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왜 우는데?

 



  

- 흐으으... 아윽-

- ..., 미안. 안 물을게.




 

  더 서럽게 우는 정국에 제대로 당황한 지민이 서툴게 정국은 껴안았다. 아까 낮에 태형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지민이 정국의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정국의 울음소리는 얕아지는 가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빵 터졌다. 몇 분을 지나도 도저히 멈출 기미가 안 보이자 지민의 이마로 식은땀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지민이 확신이 차지 않은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정국의 등을 두드렸다. 저 때문에 오히려 더 슬퍼지는 건 아닐까. 괜히 저가 괜한 애를 달랜답시고 화를 내게 한 건 아닐까. 태형이처럼 노골적으로 계속 달래달라는 표시가 없어 지민은 불안해했다. 점점 자신감을 잃고 축 쳐지는 손을 느끼며 지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곧 제 등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서툰 손길에 지민이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 ...- 미안하다고..흐윽. , 미안하다-.

- ...

 



  

  정국이 엉망이 된 얼굴로 지민의 등을 껴안았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누구보다도 애절하게 사과하는 정국의 목소리에 지민이 두 눈을 두어 번 깜박거렸다. 이상하게 그 진심어린 사과에 지민의 목에서 울컥하고 울음이 솟아올랐다. 아려오는 목을 느끼며 지민이 천천히 정국의 사과에 답했다.

   



 

- ...나도 미안.

- 끄윽- 흐윽.

- ...나도, 흐윽... 미안,.

 




  외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빠르게 눈치 챈다고 해요. 그래서 그때 정국이의 사과 한마디에 수많은 외로움이 있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눈치 챘나 봐요. 저와 정국이는 서로에게 외로움을 주고 외로움을 받았던 사이였으니까 사이좋게 사과 한마디씩 하는 게 맞는 일이었죠. 사실 다 변명이고 그냥 그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냥 다 미안해졌어요. 외로움이 얼마나 사람을 슬프게 하는지 말 안 해도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너는 괜찮을 줄 알고, 혼자 놔두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몇 분 동안 서로 부등켜 안고 눈물만 쭉쭉 뽑아냈었죠.

 


 

- ...미안.

- ...

- 미안하대 정국이가.

- ...



 

  태형이 말없이 정국이 내민 석류 알들을 노려보았다. 경계심을 숨기지 못하고 불쑥 솟은 강아지의 귀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지민이 무의식적으로 그 귀를 살며시 만졌다. 손이 닿자마자 파드득 놀라며 태형이 지민에게 소리쳤다. 만지지 마라! 그리고 그 모습을 정국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엔 마냥 사이좋아보였던 태형과 지민도 알게 모르게 꽤나 투닥거렸다. 이상하게 그 소소한 다툼을 보니 태형에게 모났던 마음이 싹 가셨다. 정국이 석류를 두드려 손바닥에 더 많은 석류 알을 꺼내놓았다. 다시금 제 앞에 내밀어 지는 석류 알을 보다 태형이 마지못해 몇 알을 제 입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혀로만 석류 알을 굴려 으깨며 태형이 최대한 석류 알을 안 먹는 것처럼 굴었다. 새끼 재구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정국이가 맞은편에 앉아 묵묵하게 마저 석류를 손으로 두 동강을 냈다. 힘 있게 갈라지는 석류를 보다 태형이 덩달아 석류 한 알을 쥐고 정국을 따라 반 동강을 내려했다. 하지만 딱딱한 석류 알은 시원하게 갈라지지 않고 짓무르기만 했다. 생각 없이 했던 행동에 도리어 셀프로 상처를 받아버린 태형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제 손에 있는 석류만 내려다 봤다.

   



 

- ....

- ....

- 니 운동 하루에 몇 시간 하냐?

- ...안 하는데.

- 그짓말 하지 마라!

 



 

  정국은 갑자기 버럭 하고 저에게 화를 내는 태형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저를 노려보는 태형의 입에 석류 알을 우수수 집어넣은 정국이 친절하게 턱을 닫아주고 바닥에 어질러진 석류껍질과 터진 알을 치워냈다. 그 단정한 모습을 보며 완전히 자존심이 부서진 태형이 치가 떨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없이 손바닥에 올려 논 석류 알을 맛보던 지민이 태형의 이상한 기미에 살며시 태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태형이 입술을 꾹 다물고 소리 없이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 너 왜 또 울어..?

- ...

- ...므시마야, 거짓말 진짜 아이다. 운동 안 한,

- ...야 니. !

- 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태형의 입술 새를 바라보며 정국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언뜻 보이는 입술 사이로 가득 들어찬 석류알들이 보였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정국이 곧 활짝 열리는 태형의 입을 마지막으로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 ...낼부터 내랑 같이 운동해라!!

- ...

 

  


 

  따발총마냥 우수수 쏟아져 나온 무른 석류 알들이 정국의 얼굴에 타닥타닥 붙어졌다. -. 지민이 식겁하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정국이 눈썹을 찡그리며 제 볼에 들러붙은 석류 알을 손등으로 쓸어냈다. 한순간에 침묵이 내려앉은 좁은 방 안엔 오직 태형의 씩씩 거리는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세 아이가 옹기종기 모인 방 밖으로 옅은 달빛이 은은하게 툇마루를 비추었다. 길게 늘여 트려진 정국의 새하얀 모시 이불은 주인을 잃었음에도 툇마루에 흐르던 달빛을 가득 끌어안아 더 새하얗게 윤이 났다. 여름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던 열기가 차츰 식어갔지만 꽉 들어찬 어느 방 안에선 그 어느 때보다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

지민이가 정국이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은 아마도 낯설음이 아니었을까요! 저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정국이를 보고 먼저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았겠죠. 이별의 괴로움에 못된 말부터 나갔을 땐 아무생각없이 화를내고 그랬겠지만, 이젠 그런 분노가 다 식어버리고 나선 그렇게 다가서기도 못했겠구요. 지민이에게 정국이는 아마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가가기가 어렵고, 태형이처럼 먼저 다가와주지도 않는 목석같은 사람.ㅋㅋ!(정작 정국이도 지민이를 목석같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ㅋㅋ!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ㅠㅠ. 전 제가 쓰다보니 늘 재밌는지 재미없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토마스마냥 계속 달립니다...


오타 사투리 틀린 부분 다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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